[뉴스스페이스=김시민 기자] 휠체어를 사용하는 독일인 엔지니어 미카엘라 ‘미키’ 벤타우스(33)가 제프 베이조스의 우주기업 블루오리진 뉴셰퍼드(NS-37)에 탑승해 인류 최초의 ‘휠체어 이용 우주 관광객’으로 카르만선을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약 10여 분간 이어진 짧은 비행이었지만, 우주 접근성(accessibility) 개념을 실제 상업 비행에 구현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민간 우주산업의 포용성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록되고 있다.
누가, 언제, 어디로 날아올랐나
블루오리진 공식 미션 페이지(New Shepard NS-37), 유럽우주국(ESA) 관련 보도, CNN·Fox Business·Space.com에 따르면, 발사 시각은 2025년 12월 20일 오전 8시경(미 텍사스 현지시간)으로, 텍사스 서부 밴혼(Van Horn) 인근 ‘런치 사이트 원(Launch Site One)’에서 뉴셰퍼드 NS-37 우주선이 이륙했다.
비행은 발사부터 착륙까지 약 10~12분가량 진행됐으며, 캡슐은 지구와 우주의 경계로 통용되는 고도 100km 부근 카르만선(Kármán line)을 넘어 몇 분간 미세중력(microgravity) 구간에 머물렀다.
블루오리진은 이번 임무가 뉴셰퍼드 프로그램의 37번째 비행이자 16번째 유인 비행이며, 이로써 지금까지 카르만선을 넘은 인원은 총 80명(86회 탑승)이라고 밝혔다.
‘휠체어 우주인’이 되기까지의 서사
벤타우스는 유럽우주국(ESA)에서 일하는 항공우주·메카트로닉스 엔지니어로, 2018년 산악자전거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은 뒤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를 사용하게 됐다.
사고 이후에도 그는 항공우주 공학 연구를 계속하면서 “장애가 우주 비행의 꿈을 끝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밝혀 왔고, ESA 내부에서도 ‘장애 포용적 우주 비행’ 논의의 상징적 인물로 주목받았다.
이번 탑승은 스페이스X의 초기 멤버이자 20년간 재사용 로켓 신뢰성을 책임졌던 한스 쾨니히스만 전 임원이 후원·제안한 것으로, 두 사람은 독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의 인연을 계기로 “장애인도 실제 상업 우주 비행에 나서는 사례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주선도 ‘접근성’으로 개조
블루오리진은 원래 엘리베이터를 통해 승객이 승·하선하도록 설계된 뉴셰퍼드 시스템을 바탕으로, 캡슐 해치에서 좌석까지 이동할 수 있는 환자 이송용 보드(transfer board)를 추가 설치해 휠체어 이용자가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했다.
무중력 구간에서 하반신이 통제 없이 ‘휘날리는’ 상황을 막기 위해, 벤타우스는 다리를 묶는 스트랩을 사용하고 좌석으로 복귀하기 쉬운 경사와 손잡이 배치를 적용하는 등 세부 설계가 조정됐다.
착륙 후에는 텍사스 사막 착지 지점에 카펫을 깔고 발사 전 남겨둔 휠체어를 즉시 접근 가능한 위치에 배치해, 쾨니히스만이 캡슐에서 그를 들어 올려 짧은 계단을 함께 내려온 뒤 바로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하는 동선이 마련됐다.
동승 크루와 비행의 숫자들
NS-37에는 벤타우스 외에 한스 쾨니히스만, 조이 하이드(Joey Hyde), 닐 밀치(Neal Milch), 아도니스 푸루울리스(Adonis Pouroulis), 제이슨 스탠셀(Jason Stansell) 등 총 6명이 탑승했다.
뉴셰퍼드는 높이 약 19.2m, 직경 3.8m, 약 7만5000kg급 단일 단계 재사용 로켓으로, 2015년 첫 비행 이후 총 36차례 발사·34회 성공·32회 착륙을 기록해온 민간 우주관광 플랫폼이다.
블루오리진은 이번 비행으로 “카르만선을 넘은 인류 80명 중 한 명이 이제 휠체어 이용자라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통계”라고 강조하며, 향후 과학 연구와 관광을 포함한 다양한 ‘포용적 비행’ 패키지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ESA·민간 우주업계가 읽는 의미
유럽우주국은 이미 오른쪽 다리를 잃은 전 패럴림픽 단거리 선수이자 의사인 존 맥폴을 ‘장애인 우주비행사(para-astronaut)’로 선발해 국제우주정거장(ISS) 장기 체류 가능성을 검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실제 ISS 비행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다.
스페이스X가 2021년 골수암을 극복한 의료인 헤일리 아르세노를 포함한 민간 승무원을 지구 저궤도에 올려보낸 데 이어, 블루오리진이 휠체어 이용자를 카르만선 너머로 보낸 것은 ‘중증 질환·장애 경험자도 우주관광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민간 시장의 새로운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스페이스X의 ‘재사용 로켓 신뢰성 책임자’였던 쾨니히스만이 경쟁사 블루오리진의 우주선에 직접 탑승해 장애인의 우주 비행을 지원한 장면은, 민간 우주정책이 경쟁을 넘어 ‘포용성과 브랜드 이미지’ 경쟁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가 시작에 불과하길”
벤타우스는 착륙 직후 인터뷰에서 “솔직히 지금까지 겪은 일 중 가장 멋진 경험이었다”며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문이 열리길 바란다. 내가 시작에 불과하기를 바란다”고 말해 지상 관제소와 전 세계 중계 채널을 통해 큰 박수를 받았다.
그는 비행 전 인터뷰에서 “이번 임무는 휠체어 이용자 한 사람의 여행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이 우주를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테스트 케이스”라며 “우주선과 인프라, 보험과 규제까지 장애를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블루오리진과 ESA, 그리고 쾨니히스만을 비롯한 민간 업계 인사들은 벤타우스의 사례를 계기로, 앞으로 탑승자 선발 기준·우주선 내부 설계·지상 지원 시스템에서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한 ‘접근성 표준’ 논의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내놓고 있다.











































